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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의 무늬

회사를 나온 네 사람은 왜 다시 같이 일을 시작했을까

구조조정 뒤 각자의 길을 생각하던 네 사람이, 회사에서 미처 해보지 못했던 아이디어 하나를 계기로 다시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8월에 회사를 나왔다.

구조조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차장이었고, 함께 나온 사람은 이사님과 프론트엔드 과장, 백엔드 과장이었다.

대표를 제외하면 회사에서 여러 일을 실제로 관리하던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빠져나온 셈이었다.

처음부터 네 사람이 무언가를 같이 해보자고 약속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나오면 각자 자기 길을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직장을 알아볼 수도 있고, 쉬면서 다음 일을 고민할 수도 있었다. 나 역시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조금 막막했다.

대신 시간은 생겼다.

회사에 다닐 때는 해야 할 일이 계속 앞에 놓여 있었다. 퇴사하고 나니 반대로 앞으로 무엇을 할지를 직접 정해야 했다.

그때 회사에 다니면서 따로 생각해두었던 아이템들이 떠올랐다.

업무 때문에 서비스를 기획하다 보면 실제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이건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생길 때가 있다. 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어서 메모하거나 머릿속에 남겨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문제집이었다.

출판사에는 이미 좋은 문제와 콘텐츠가 많이 쌓여 있다. 그런데 상당수는 여전히 종이책 중심이었다.

종이 문제집을 샀다가 온라인에서 비슷한 문제를 다시 찾거나, 틀린 문제를 직접 표시하고, 성적을 따로 정리해야 하는 경험도 익숙했다.

그렇다면 출판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온라인에서 바로 풀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단순히 종이책을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CBT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결과를 확인하고, 학습에 필요한 기능들을 붙이는 것이다.

온라인 사업을 직접 하기 어려운 출판사라면 이런 시스템 자체를 판매할 수도 있고, 매달 사용하는 서비스 형태로 제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 내 주변에는 방금까지 같은 회사에서 실제 제품을 만들던 사람들이 있었다.

화면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서버를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전체 기술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어떤 서비스를 만들지 정하고 사람과 일을 연결하는 쪽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냈다.

“이걸 같이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거창하게 회사를 차리자는 이야기부터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있고, 마침 각자가 가진 역할이 맞았다. 무엇보다 서로가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모아 팀을 만든다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부터 봐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같은 회사에서 이미 일을 해봤다.

누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뿐 아니라 일이 꼬였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명을 어느 정도 해야 이해하는지, 결정이 늦어질 때 누가 정리하는지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건 경력기술서에는 적히지 않는 정보였다.

내가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세 사람은 해보자는 쪽으로 답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다시 같은 일을 보기 시작했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직급과 부서가 있었다.

이사, 차장, 프론트엔드 과장, 백엔드 과장.

하지만 밖으로 나오니 그 직급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 보고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 것인지와 각자 무엇을 맡을 것인지였다.

이상하게도 그 차이가 꽤 컸다.

회사에서는 이미 정해진 사업과 조직 안에서 역할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문제부터 골라야 했다.

이 제품이 정말 필요한지, 누가 돈을 낼지, 어디까지 만들어야 하는지조차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기획자인 내 역할도 달라졌다.

화면과 기능을 정의해서 개발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것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했고, 세 사람이 시간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계속 판단해야 했다.

아직 회사도 없었다.

제품도 없었다.

사업이 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보기로 했다.

퇴사한 네 사람이 다시 모였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그때 우리에게 있었던 것은 대단한 확신보다 서로 같이 일해본 경험과 하나의 아이디어였다.

지금은 그 정도면 시작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문제집을 온라인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옮기는 것부터 만들어보려고 한다.

다 만들어놓고 회사를 생각할지, 어느 정도 만들어졌을 때 출판사를 만나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네 사람이 각자 잘하는 것을 들고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보는 데 집중할 것 같다.

회사를 나오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다시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정해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놓고서.

그날의 성장 노트

남은 생각 — 같이 일할 사람을 새로 찾는 것과 이미 같이 일해본 사람들과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기술과 경력만큼 중요한 것은 서로가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의 기준 — 회사를 먼저 만드는 것보다,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것이 정말 있는지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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