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만들었는데, 시장이 먼저 바뀌었다
네 사람이 몇 달 동안 만든 제품이 거의 완성됐을 때, 문제는 개발이 아니라 우리가 이 제품을 앞으로도 팔 수 있느냐는 쪽으로 옮겨갔다.
지난 몇 달 동안 네 사람이 붙잡고 있던 문제집 서비스가 거의 모습을 갖췄다.
처음에는 아이디어뿐이었다.
출판사가 가지고 있는 종이 문제집을 온라인에서도 풀 수 있게 만들고, 단순히 문제를 화면에 옮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 기록과 결과까지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 아이디어를 프론트엔드 화면으로 만들고, 뒤에서 데이터가 움직이도록 붙이고, 실제 사용자가 문제를 풀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데 몇 달이 걸렸다.
11월과 12월을 지나면서 이제는 제법 제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처음 회사를 나왔을 때만 해도 네 사람이 다시 모여 무엇인가를 실제로 완성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걸 누구에게 어떻게 팔 것인가.
제품을 만들었으니 회사를 만들고, 출판사를 만나고, 영업을 시작해야 했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였다.
그런데 새해가 되면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AI가 코드를 만드는 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화면 하나를 만들고 기능 하나를 붙이려면 개발자가 직접 상당한 시간을 써야 했다. AI를 이용할 수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개발자를 도와주는 정도라고 느꼈다.
그런데 새로 나온 AI들을 써보면서 그 경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드를 모르는 사람도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가 만든 제품을 다시 보게 됐다.
제품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몇 달 동안 만든 기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사야 하는 이유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출판사를 만나서 “온라인 문제풀이 서비스를 만들어드립니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봤다.
몇 달 전에는 자체 개발팀이 없는 출판사라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까.
AI가 지금 속도로 좋아진다면 우리가 어렵게 만들었던 것 중 상당 부분의 제작 비용은 계속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면 우리가 팔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기술인가.
시스템인가.
아니면 출판사가 직접 하기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것인가.
제품을 거의 완성하고 나서야 오히려 제품의 이유를 다시 묻게 됐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네 사람이 몇 달 동안 시간을 썼고, 실제로 돌아가는 형태까지 만들었다.
보통이라면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팔아보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를 만들고 영업을 시작하는 것은 제품 하나를 더 수정하는 것과는 다른 결정이었다.
법인을 만들고, 비용을 쓰고, 사람들이 계속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제품을 완성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다음 단계까지 밀어붙이기에는 시장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제품을 살리는 방법보다 먼저 우리가 가진 사람과 기술로 다른 문제를 풀 수 없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 제품을 만들면서 한 가지는 확인했다.
네 사람이 함께 제품 하나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문제집이라는 주제에 묶여 있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업무를 보면서 계속 눈에 들어오던 문제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문서를 사람이 읽고, 필요한 내용을 다시 엑셀이나 시스템에 입력한다.
PDF든 견적서든 보고서든 형식만 다를 뿐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OCR은 문자를 읽어준다.
하지만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문자가 아닐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견적서를 처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견적서에 적힌 모든 문장이 아니라 회사명, 날짜, 품목, 금액처럼 바로 업무에 사용할 수 있는 값이다.
그렇다면 파일을 넣고 필요한 데이터 구조를 먼저 정하면, AI가 그 구조대로 정보를 뽑아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다.
어떤 산업부터 시작할지도 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돈을 낼지도 모른다.
그래도 첫 번째 제품을 만들기 전과는 조금 다르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네 사람이 모두 달려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게 만들어보고, 실제로 필요한지부터 확인하고 싶다.
제품을 거의 다 만들어놓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맞는 판단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미 만든 것에 아까워서 계속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몇 달 동안 만들었던 첫 제품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것을 만드는 동안 네 사람이 실제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경험을 가지고 다음 문제를 고르는 중이다.
제품은 거의 완성됐다.
그런데 시장이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도 멈춰 있는 제품을 지키는 대신, 다시 움직여보기로 했다.
그날의 성장 노트
내가 놓쳤던 것 — 제품을 만드는 동안에는 완성도에 집중했지만, 우리가 완성하는 사이 시장의 제작 비용과 경쟁 조건도 계속 변하고 있었다.
이번에 바뀐 판단 — 이미 많은 시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회사를 만들고 영업까지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다. 제품보다 사업성이 먼저였다.
기획자의 원칙 —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다음 결정을 대신하게 두지 않는다. 환경이 달라졌다면 제품의 존재 이유부터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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