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문제집을 온라인 제품으로 바꾸려 했다
출판사가 이미 가진 문제와 콘텐츠를 다시 만드는 대신, 종이 안에 갇혀 있던 자산을 온라인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회사를 나온 뒤 네 사람이 함께 무엇을 해볼지 이야기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꺼낸 아이디어 중 하나는 문제집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더 잘 활용하는 방법에 가까웠다.
출판사에는 수년 동안 만들어온 문제와 교재가 쌓여 있다. 문제를 만들고 검수하고 책으로 내는 데 이미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다.
그런데 책으로 출판되고 나면 사용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학생은 문제집을 사고, 종이에 답을 적고, 채점하고, 틀린 문제를 다시 확인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콘텐츠는 계속 쌓이지만 그것을 온라인 서비스로 확장하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웹사이트가 필요하고, 시스템이 필요하고, 개발자도 필요하다.
온라인 사업을 전문적으로 해온 회사가 아니라면 콘텐츠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디지털 제품으로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
나는 그 사이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출판사가 온라인 서비스를 처음부터 직접 만들 필요가 없다면 어떨까.
기존 문제집을 우리가 온라인에서 풀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는 것이다.
학생은 종이책에서만 문제를 푸는 대신 온라인에서도 문제를 풀 수 있고, 단순히 문제를 화면에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
출판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버리지 않는다.
새로운 콘텐츠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문제와 교재 제작은 그대로 하고, 우리가 그것을 온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바꾸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CBT라는 형태가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
문제가 나오고, 답을 선택하거나 입력하고, 결과를 확인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시험 화면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는 조금 더 넓었다.
종이책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일을 온라인에서는 할 수 있다.
사용자가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기록할 수도 있고, 그 기록을 다시 학습에 사용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종이를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서는 남기기 어려웠던 학습 과정을 데이터로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업 방식도 두 가지를 생각했다.
출판사가 자신의 서비스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 자체를 공급할 수도 있고, 직접 시스템을 만들기 어려운 출판사가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SaaS 형태로 제공할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교육 콘텐츠 사업자가 될 필요도 없었다.
잘하는 것을 나누면 됐다.
출판사는 콘텐츠를 만든다.
우리는 그 콘텐츠가 온라인에서도 작동하도록 제품을 만든다.
이 구분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서비스를 기획할 때 자주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새로운 것을 반드시 처음부터 만들어야만 제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것에 다른 사용 방법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제품이 될 수 있다.
이번 아이디어도 그랬다.
출판사에는 이미 문제라는 자산이 있다.
학생에게는 이미 공부해야 할 내용이 있다.
새로 만들고 싶은 것은 그 사이의 사용 방식이었다.
네 사람이 함께 일을 시작하기로 하고 나니 아이디어를 말로만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화면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들어와야 하는지, 출판사마다 다른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같은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획서 안에서는 한 문장이었던 것이 실제로 만들기 시작하면 여러 개의 결정으로 나뉜다.
“문제집을 온라인으로 만든다.”
말로는 간단하다.
하지만 실제 제품이 되려면 어떤 출판사의 어떤 문제집도 같은 방식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출판사가 직접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까지 제공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정해야 한다.
그 과정을 네 사람이 나누어 시작했다.
나는 어떤 제품이어야 하는지를 계속 정리했고, 개발자들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구조인지 확인하며 만들어갔다.
아직 회사를 만든 것도 아니고 고객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래도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회사에 있을 때의 기획은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사업과 조직 안에서 시작했다.
이번에는 문제를 고르는 것부터 우리 몫이었다.
누가 써야 하는지, 누가 돈을 낼지, 어떤 방식으로 제공할지까지 처음부터 정해야 했다.
그래서 오히려 제품을 만든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느끼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의 실제 업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했다.
출판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아도 되고, 자신들이 잘하지 못하는 온라인 영역을 처음부터 공부하지 않아도 되며, 학생에게는 종이책과 다른 학습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결국 그 연결부다.
종이책과 온라인 사이.
출판사의 콘텐츠와 학생의 학습 사이.
그리고 아이디어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사이.
아직 만들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소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는 꽤 명확하다.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좋은 문제들이 더 오래, 더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을 만들고 싶다.
그날의 성장 노트
처음의 생각 — 새로운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 이미 좋은 콘텐츠를 가진 출판사의 약한 부분을 제품으로 보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제품으로 바뀐 지점 — “문제집을 온라인으로 옮긴다”에서 끝내지 않고, 출판사가 직접 온라인 사업을 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판매형·SaaS형 제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획자의 원칙 — 아이디어는 새로움만으로 제품이 되지 않는다. 누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과 어떤 불편을 연결해서 실제 사용 방식으로 바꿀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글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결을 같이 하기